20장. 다짐이 향하는 곳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의 눈 앞에는 목숨과 모든 내공을 쏟아부어 자신을 치료해 준 팔부기재의 마지막 모습이 스쳐갔다. 그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였다.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복수를 하겠단 결심이. 이래서는 복수의 길을 걷는 도중에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백림사 본당에서 선택을 한 후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백림사 본당 안에 들어온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삼사년 전 쯤부터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있었던 홍문파 도복을 꺼냈다. 사부님과 사형, 사저들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 후 배신자 무성의 얼굴이, 진서연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들로 인해 비참하게 죽어간 사형과 사저들의 싸늘하게 식은 모습이 기억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꼭 살아남으라고 외치며 한 줌 재가 되고 만 사부님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라서, 눈가가 시큰해졌다. 막내야, 꼭 살아남거라. 그 말은 마음 속에 낙인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의 그에게 홍문파 식구들의 유언은 복수심을 기르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살아남아서, 진서연 일당과, 무성을 막내의 손으로 죽여달라는 뜻으로 비틀리고 말았으니까.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도복 위에 얹은 손을 꽉 쥐었다. 말끔하게 접혀 있던 도복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현담대사 앞에 섰다. 마음을 정했는가? 현담대사가 물었다.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이미 결정은 내린 지 오래되었고, 흔들릴 리 없다고 말했다.

 

현담대사는 자신 앞에 선 대협을 보았다. 그 눈빛만 보아도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묻기로 했다. 어떤 선택을 했느냐고. 대협은 망설임없이 입을 열었다. 마도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만 생각해 보게, 하며 현담대사는 그 눈빛이 꺼지도록, 단 한 번이라도 더 말리고 싶었다. 자신이 했던 과거의 선택이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대협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한다면 오죽 좋으련만.

 

말리실 생각이라면 그만두라는 대협의 말에 결국 현담대사는 이 대협의 선택을 말릴 수 없음을 깨닫고는 제단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섰다.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제단 앞으로 걸어가 검붉은 불꽃이 넘실거리는 화로에 홍문파 도복을 태웠다. 그렇게나 추억이 깃든 도복을 불태우는데도,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타오르는 도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 마세요. 사부님, 사형, 사저. 제가 꼭 원한을 풀어드릴 테니까.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줌 재가 된 도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백림사를 떠났다. 그는 진짜 결심을 보여줬다는 의미로 유란이 보낸 마도신공 수련복을 내려다보았다. 정이 가는 옷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이 길을 걸을 것이니, 차차 가까워지면 그만이었다. 이제 어둠을 수련하고, 마공을 다스려 복수하는 일만 남았다. 말로써는 간단하지만, 정작 시도하면 험난한 길일 터였다.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그 첫걸음을 떼기 위해, 용맥을 타고 대사막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대사막은 여전히 황량하고 기분 나빴다. 이 넓은 곳을 돌아다니며 있었던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사부님이 모욕당하고 자신은 살인자로 몰렸던 일,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관리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일, 배신자 무성을 만났던 일, 온갖 더러운 인간군상을 만났던 일…….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 일들을 겪었던 순간만큼 화가 치밀어올랐다.

 

유가촌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무성이 왜 그리 됐는지도 알 법했다. 무성을 이해하고 용서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왜 그런 인간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있었다. 권력 앞에서는 약자가 되고, 그 권력을 등에 업고선 약자에게 강자가 되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마을기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무색하게, 유가촌은 여전히 조용했다. 홍문파의 마지막 제자는 이것이 시덥잖은 뒤끝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내 마음 저편으로 넘겨버렸다. 그렇건 아니건,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이것은 어둠을 수련하기 위한 피 몇 방울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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